임채욱 개인전
<인수봉-임공이산(林公移山)>
2018년 6월 8일(금) ~ 2018년 7월 1일(일)
■ 전시 개요
○ 전 시 명: 임채욱 개인전 <인수봉-임공이산(林公移山)>
○ 전시기간: 2018년 6월 8일(금) ~ 2018년 7월 1일(일)
○ 전시장소: 자하미술관
○ 전시장르: 사진, 설치, 영상
○ 참여작가: 임채욱
○ 전시오프닝: 2018년 6월 8일(금) 오후 5시
<임채욱의 작가정신과 인수봉 프로젝트>
■ 윤범모(미술평론가)
세계의 어떤 대도시를 가보아도 서울과 같은 자연환경을 지니고 있는 도시는 없다. 한강이라는 거대한 강과 북한산과 같은 거대한 산을 동시에 품고 있는 도시가 없기 때문이다. 뉴욕, 워싱턴, 베이징, 도쿄, 파리, 런던, 베를린, 로마… 그 어떤 도시에도 서울과 같은 강과 산은 없다. 그래서 서울은 복받은 도시이다. 아니 서울 시민은 축복받은 시민이다. 그런데 시민들 스스로는 그 축복을 모르는 것 같다. 아무런 맥락도 없는 해치 같은 것을 서울시의 상징으로 삼는 것만 보아도 그렇다. 해치는 판관(判官)의 역할을 하는 일각수(一角獸)이다. 사자도 아니고 해태도 아닌 해치를 서울시의 상징으로 삼은 정책은 그래서 희극이다. 서울시의 상징으로 북한산 자락의 인수봉은 어떨까? 인수봉은 백운대와 더불어 서울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해발 810m). 온통 바위 덩어리로 이루어져 일반인은 쉽게 오를 수 없는 외경의 대상 그 자체이다. 우뚝 솟은 산, 우람하다. 그 멋진 자태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인수봉, 서울 시내 고층 빌딩 사이에서도 볼 수 있는 산, 우람한 산. 그 바위산은 마치 '큰 바위 얼굴'처럼 오늘도 서울시를 감싸 안아주고 있다. 그런 인수봉을 서울시의 랜드마크로 지정하자는 작가가 있다. 임채욱이다.
임채욱을 '인수봉 전도사'라고 불러도 좋으리라. 얼마 전에는 설악산을 주제로 하여 대형 전시를 개최하더니, 이제 인수봉을 들고 미술계에 나타났다. 임채욱은 미술계, 사진계, 산악계를 두루 섭렵한 이색 경험을 갖고 있다. 그는 이른바 동양화 수학시절 인수봉을 소재로 한 수묵작업을 한 바 있고, 사진작업을 통하여 인수봉을 재해석하고자 했고, 더불어 산악인과 함께 인수봉 학습을 이루어냈다. 이런 바탕에서 이번 '인수봉 프로젝트'가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까 관광객처럼 인수봉의 외피만 그리려 한 것이 아니라, 그는 인수봉 내부로 들어가 인수봉의 내밀한 언어를 독해했고, 그 결과를 자신만의 작품에 담을 수 있었다.
임채욱과 인수봉, 그 둘의 관계는 이제 30년을 바라보게 되었다. 임채욱은 군대시절, 수유리에서 철원행 버스를 타면서 인수봉을 처음으로 마주했다. 가슴으로만 본 3년의 인수봉이었다. 그 후 미대를 다니면서 3년간 인수봉을 화면에 담았다. 이어 방황시기를 거친 다음 인수봉을 주인공으로 하여 사진작업을 하기 시작한 지 10여 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그러니까 임채욱 인생의 절반은 인수봉과 함께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에게 인수봉은 작가생활의 출발이면서 고향이기도 하다. 임채욱은 인수봉을 사진작업에 담으면서 크게 3가지 영역으로 정리했다. '인수봉의 초상', '인수봉과 사람', '인수봉과 서울'이다. 임채욱에게 인수봉은 '큰 바위 얼굴'처럼 외경의 대상이었다. 작가는 인수봉의 사계를 360도로 돌면서 촬영했다. 인수봉은 계절에 따라, 조석의 햇볕에 따라, 보는 각도에 따라 모습을 달리한다. 독수리, 합장한 불자, 불상, 말 머리 등으로 보이는가 하면 날 저문 뒤의 외경은 남미 안데스의 거벽 파타고니아와 흡사하다. 임채욱은 그런 다면적 인수봉의 모습을 렌즈에 담았다. '인수봉의 초상'이다.
인수봉은 산악인에게 교과서 같은 훈련장이다. 한국 출신의 국제적 산악인이 많은 것도 모두 인수봉 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수도 근교에 우뚝 솟은 인수봉은 암벽 등반 훈련장으로 훌륭했기 때문이다. 현재 인수봉에 오르는 바윗길은 89개로 알려져 있다. 지금도 주말만 되면 수십 명, 때로는 백여 명의 사람들이 촘촘하게 인수봉 언저리에 붙어 오름짓을 한다. 도시 근교의 이색풍경이다. 임채욱은 그들을 주인공으로 카메라에 담았다. 자연과 인간, 그 관계를 천착한 결과이다. 그가 찍은 '인수봉과 사람'이다.
'인수봉과 서울'은, 도심에서 보이는 인수봉의 모습을 담은 것이다. 별이 빛나는 야경 속의 인수봉, 특히 도심의 아파트 사이로 보이는 인수봉은 장관을 이룬다. 수유역 버스정류장에서 보이는 인수봉은 더욱 크게 보인다. 대로의 횡단보도에서 보이는 커다란 산, 이는 세계적으로 드문 현상이다. 임채욱은 수면 위에 비치는 인수봉도 렌즈에 담았다. 물이 너무 가까워도, 혹은 너무 멀어도, 산의 전체 모습은 수면 위에 비치지 않는다. 인수봉의 경우, 8킬로미터 떨어진 우이천에서 반사되고 있다. 아이들이 물고기를 잡는 개울에서 인수봉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물속에 잠긴 인수봉의 모습, 그 뒤에 아파트촌이 배경처럼 서 있고, 밤하늘에는 별도 축복처럼 빛나고 있고… 인수봉의 또 다른 면모이다. 세계의 어떤 곳에서도 보기 어려운 풍경, 인수봉은 새로운 접근을 요구하고 있다. 인수봉을 서울시의 랜드마크로 삼기에 부족함이 없는 이유이다. 인수봉은 임채욱의 사진작업 속에서 새로운 모습을 나타냈다. 하기야 사진작가는 많고도 많다. 자연 특히 산을 소재로 하여 촬영 작업을 하는 사진가는 너무나 많다. 하지만 임채욱은 미대 출신답게 남다른 조형성을 챙기고 있다. 그것은 이색 재료의 활용에서도 도드라진다. 재료의 새로운 확장은 현대미술의 특징 가운데 하나이기는 하지만 한지를 사진작업에 끌고 들어온 것은 획기적인 사태이다. 특히 한지의 신축성을 활용하여 입체적으로 사진작업을 한 점은 놀랍다. 전통한지의 우수성은 이미 세계적으로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지필묵의 전통을 수학한 임채욱은 한지의 성질을 만끽했다. 수묵의 번지기 효과는 한지의 특성을 반영한 결과이다. 임채욱은 수묵화의 효과를 사진으로도 대체할 수 있었다. 흑백으로 인화한 한지 사진작품은 수묵화 분위기를 잘 보여주었다.
한지는 신축성이 좋은 종이이다. 질기고 유연함은 한지의 특징이다. 구길 수 있는 종이, 그 특성을 살려 임채욱은 인화지 대신 한지에 사진작업을 했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가 작가는 한지를 구겨 입체적 표현을 시도했다. 일종의 종이 구기기 부조이다. 산을 촬영한 사진작품이지만, 산의 괴량감을 한지 구기기 기법으로 입체감을 부여했다. 여기서 임채욱은 입체 사진작업에 조명시설인 등을 활용했다. 즉 한지사진을 입체적으로 만들어 내부에 조명을 설치한 것이다. 그 결과 한지의 투과성 때문에 독특한 조명효과가 드러났다. 스마트 폰으로 장치하면 관객 참여의 효과도 낼 수 있다. 즉 스마트 조명 작품이다. 관객 참여의 음파 작업. 관객의 목소리에 따라 즉 음파에 따라 조명이 반응하기 때문이다. 이는 한지 작업의 새로운 시도이다. 질기고 유연한 한지를 이용한 입체사진 작업. 이는 표현 형식의 확장이고 매체의 개발이기도 하다.
임채욱의 사진작업과 인수봉. 이는 치열한 작가정신의 소산이기도 하지만 인문학적 배경을 중시하는 작가의 태도와도 연결된다. 달리 표현한다면, 산의 겉모습만 촬영하는 일반 사진가와는 차원을 달리한다는 의미이다. 이는 취나드에 대한 그의 관심과 작업에서도 드러난다. 이본 취나드(Yvon Chouinard)는 국제적으로 명성 높은 아웃도어 의류회사인 파타고니아의 창업자이다. 그는 주한미군으로 근무하던 1963년, 인수봉에서 새로운 등반 루트를 개척했다. 물론 그곳은 장비 없이 올라갈 수 없는 직각의 암벽이었다. 그 길은 후에 '취나드길'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는 암벽 등반용 각종 장비를 개발했으며 친환경 제품의 생산과 환경운동을 통하여 자신의 명성을 국제적으로 높였다. 임채욱은 인수봉을 공부하면서 취나드라는 인물을 알게 되었고, 결국 취나드는 임채욱의 멘토가 되었다. '관광 산수'라는 말이 있다. 관광객처럼 산의 겉모습만 슬쩍 보고 그린 산수화를 비판하는 말이다. 대상의 본질로 들어가기보다 피상적으로만 접근하는 태도, 이는 무게 있는 작품과 연결되기 어렵다. 임채욱은 인문학적 바탕을 중요하게 여기면서, 대상의 본질과 만나고자 고심하는 작가이다. 그래서 남다른 시각을 얻을 수 있었고, 또 그와 같은 결과는 자신만의 표현형식과 내용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임채욱의 인수봉 프로젝트는 작가정신의 다른 표현이라고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인수봉이 자아내는 의미는 새롭다. 인수봉은 서울의 자존심이자 보배이다. 인수봉이 서울시의 상징이 되어야만 하는 이유가, 긴 설명 없이 그의 사진들을 통해 직관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 작가 노트
철원에서 군 생활을 하던 1992년무렵이었다.
휴가를 마치고 자대 복귀를 위해 수유리에서 철원행 버스를 탔다.
버스 창가에서 우연히 거대한 봉우리를 보았다.
처음 그 봉우리와 마주친 순간
큰 바위 얼굴을 닮은 모습에 넋을 잃고 바라봤다.
인수봉과의 운명적인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고달프고 힘든 군 생활에서 인수봉을 바라보던 순간은 작지만 큰 행복이었다.
인수봉과 인연을 맺은 지도 벌써 26년의 세월이 흘렀다.
인수봉을 가슴으로 본 3년간의 군대 시절,
인수봉을 그림으로그린 3년간의 대학 시절,
인수봉을 무심하게 잊은 9년간의 방황 시절,
인수봉을 사진으로 작업한 11년간의 작가 시절,
내 인생의 절반을 인수봉과 함께했다.
인수봉 임공이산(林公移山)이란 부제는 우공이산(愚公移山)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
우공이산은 어리석은 사람이 산을 옮긴다는 의미다.
우공을 임공으로 바꾸면 임채욱이 산을 옮긴다는 의미가 된다.
내가 26년간 인수봉을 어떻게 작업으로 옮겨왔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임공이산이다.
인수봉의 첫 작업은 사진보다 회화로 먼저 시작했다.
대학 시절 동양화를 전공하면서 인수봉으로 몇 가지 작업을 시도했다.
첫째는 수묵화로 인수봉을 그린 것이고 두 번째는 한지를 구긴 바탕 위에 수묵으로 인수봉을 표현한 것이다.
세 번째는 한지의 재료인 닥종이를 붙여서 입체 인수봉을 만들었다.
지금 내가 사진으로 다양한 작업을 하게 된 것은 모두 대학 시절의 경험 덕분이다.
현재는 사진을 매체로 평면과 입체 그리고 설치 영상으로까지 인수봉 작업의 범위를 확장시켰다.
최근 새로운 영역의 작업이 하나 추가되었다. 바로 스마트 인수봉이다.
스마트 인수봉은 스마트폰의 앱으로 작동하는LED 조명이 탑재된 한지 입체 인수봉이다. 스마트폰을 통해1600만 컬러로 조명의 색을 바꿀 수도 있으며 소리에 반응하여 빛의 색이 변하기도 하는 작품이다. 스마트 인수봉은 단순히 색을 바꾼다는 기능적인 의미보다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자가 스마트폰으로 작품을 직접 컨트롤하면서 관객과 소통한다는 의미에 더 중점을 둔 작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