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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피개인전 <여-불천위제례 女-不遷位祭禮>

2018년8월 30일(목) ~ 2018년 9월 23일(일)

《전시 안내》

○ 전 시 명:  이피개인전 <여-불천위제례 女-不遷位祭禮>
○ 전시기간:  2018년8월 30일(목) ~ 2018년 9월 23일(일)
○ 전시장르:  회화, 설치, 드로잉
○ 참여작가:  이피
○ 오 프 닝:  2018년 8월 31일(금), 17:00
○ 전시장소: 자하미술관


《전시 소개》
 
이피의 ‘여불천위제례(女不遷位祭禮)’

                                                                               ■ 류병학 미술평론가
 
 “안녕하세요. 자하미술관 강종권입니다. 한 가지 부탁이 있어서 연락드렸습니다. 다름 아니라 8월 말경 자하미술관에서 이피 작가의 개인전을 개최할 예정입니다. 이피 작가는 독특한 작품을 함에도 불구하고 아직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한 것 같아, 선생님께 이피 작가의 개인전 서문을 부탁하고 싶습니다.”
 
  당 필자, 자하미술관 강종권 관장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왜냐하면 필자가 그동안 본 이피의 작품들은 강 관장이 말했듯이 독특한 세계관을 표현한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필자는 그녀의 독특한 작품세계로 한 걸음 더 들어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몇 일 후 자하미술관 남혜인 큐레이터로부터 연락이 왔다. 이피 작업실 방문 일정 관련해서였다. 
     
 지난 8월 중순 폭염이 내리 쬐는 날, 필자는 성북구 보문동에 위치한 이피의 작업실을 방문했다. 이피 작업실은 어린이집이 있는 5층 건물의 4층에 위치해 있었다. 필자는 천진난만하게 ‘놀이(공부)’하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지나 엘리베이터를 탔다. 4층에 당도하니 맑은 눈을 지닌 이피가 필자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이피의 안내를 따라 작업실로 들어섰다.
 
이피의 ‘서유기(Monkey to the West)’
 
 와우(wow)~! 필자는 컬러풀한 작품들을 보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화려한 컬러들에 눈이 멀었던 것이다. 필자는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Alice in Wonderland)’가 된 기분이었다. 오잉? 필자가 화려한 컬러들을 ‘입은’ 형상들로 한 걸음 들어가니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필자가 이제껏 한 번도 본적이 없는 형상들이었기 때문이다.
 
 작업실 한 켠에 있는 이피의 <내 몸의 전세계>(2015)가 필자의 발길을 유혹한다. 그것은 ‘핑크 피부’의 여자를 조각한 일명 ‘핑크-걸’이다. 엥? ‘핑크-걸’의 몸에 수많은 작은 조각들이 ‘기생(parasite)’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더욱이 그 작은 조각들은 기이한 모습을 하고 있다. 작은 조각들이 열라 많아 오히려 숙주(host)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이를테면 ‘핑크-걸’이 거꾸로 작은 조각들에 기생하고 있는 것으로도 열려져있다고 말이다.
 
 오! 진열장 안에 아름다운 드레스가 진열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지난 2011년 보안여관 윈도우갤러리에 전시되었던 아름다운 레이스와 마른 생선의 껍질로 제작된 <이상의 혼장례>(2011)이었다. 혼장례? 이피는 당시 윈도우갤러리 유리창에 ‘결혼행렬이 장례행렬이 되는 그 불우의 혼례’라는 텍스트를 시트지로 인쇄해 부착해 놓았다.
헉!!! 어디선가 필자의 코를 자극하는 오징어 냄새가 진동하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이피의 일명 ‘오징어 작품’인 <승천하는 것은 냄새가 난다>(2010)에서 나는 냄새였다. 이피는 ‘승천하는 것’을 말린 오징어들로 만들어 놓았다. 밀폐된 아크릴박스에 작품이 진열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징어 냄새가 난다는 것은 그만큼 오징어가 강열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와이? 왜 이피는 ‘승천하는 것’을 냄새나는 오징어로 제작한 것일까? 이피는 미국 시카고 아트인스티튜트(Art and Technology Studies School of the Art Institute of Chicago)에서 예술 분야 학사와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귀국해 광화문 광장을 찾았다. 촛불집회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촛불집회가 끝나갈 무렵 어디선가 오징어 냄새가 났다. 냄새를 쫒아가 보니 사람들이 길거리 한 가운데서 휴대용가스기기에 오징어를 구워먹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본 이피는 다음과 같이 중얼거린다.
 
 “말린 오징어는 서양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음식 재료이다. 특히 구운 오징어 냄새는 시체 타는 냄새가 난다고 혐오한다. ‘해저2만리’에서 오징어는 처단해야할 괴물이다 (...) 오징어 냄새는 서양의 타자이며 아브젝시옹(abjection)이지만, 서울은 그 냄새로 서양의 이방인이었던 나를 환대했다.”
 
 울컥했다. 왜냐하면 그녀가 미국에서 유학생활 할 당시 ‘냄새나는 오징어(이방인)’으로 차별받았던 것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이피는 귀국 후 그동안 이방인으로서 여성으로서 사회로부터 차별받은 것들에 ‘장풍’을 날리기 시작했다. 만약 당신이 이피의 전작을 모조리 조회한다면, 그녀의 작품들이 각종 ‘차별’에 대한 일종의 ‘똥침’이라는 것을 감 잡을 수 있을 것이다.
 
 2010년 이피는 아트링크(Gallery Artlink)에서 귀국전을 개최한다. 그런데 그녀는 개인전 타이틀을 의미심장하게도 <나의 서유기(Monkey to the West)>로 명명했다.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서유기(西遊記)>는 삼장법사(三藏法師)와 그의 세 제자인 손오공(孫悟空), 저팔계(猪八戒), 사오정(沙悟淨)이 불경을 얻기 위해 서역국으로 향하며 겪는 여정을 그린 것이다.
 
 이피의 작품세계는 마치 ‘81가지 어려운 고난(八十一難)’의 여정처럼 보인다. 물론 그녀는 아직 서역에 도착하지 못했다/않았다. 왜냐하면 그녀가 아직 ‘81가지의 고난’을 모두 겪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오늘도 또 다른 ‘차별(고난)’과 맞서 한 판 승부를 벌이고 있다. 따라서 이번 자하미술관의 이피 개인전 <여불천위제례(女不遷位祭禮)>에 출품될 작품들은 최근 그녀가 마주한 ‘차별’에 ‘똥침’을 놓은 것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나의 개념이 되기 이전의 ‘날 것(生畵)’
 
 머시라? ‘여불천위제례’가 무슨 뜻이냐고요? ‘불천위제례’는 들어봤어도 ‘여불천위제례’는 처음 듣는다고요?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불천위제례’는 4대를 넘긴 신주(神主)를 땅에 묻지 않고 사당에 영구히 모시면서 지내는 제례를 뜻한다. 그런데 불천위제사는 아무나 지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불천위’는 덕망이 높고 국가에 큰 공로가 있는 인물을 영원히 사당(祠堂)에 모시도록 국가에서 허가한 신위(神位)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물론 불천위는 국가에서 임금의 명이나 조정의 논의로 예조의 심의를 거쳐 결정한 것이지만, 이후 지역 유림에서 자체적으로 학행과 덕망을 지닌 향촌의 인물도 불천위로 정한 향(향천, 향촌, 유림) 불천위란 말도 나타났다. 따라서 불천위제사는 조상의 덕을 기리고 혈족의 정을 나누는 과정을 통해 문중 성원으로서 정체성을 강화하는 기능을 하게 되었다. 두말할 것도 없이 불천위제사는 다른 문중에게 자기 문중의 위세를 과시는 수단이 되기도 했다.
 
 자, 이제 ‘여불천위제례’가 무엇을 뜻하는지 감 잡으셨을 것이다. 그렇다! 그것은 불천위제사에 배제된 여자를 위한 새로운 제례를 뜻한다. 따라서 이번 자하미술관의 이피 개인전 <여불천위제례>는 지난 6월 아트플레이스(ARTPLACE)에서 열린 그녀의 개인전 <피미니즘 프노시즘(Fiminism Fnositicism)>의 연장선상에 있는 전시라고 할 수 있겠다.
 
 뭬야? ‘피미니즘 프노시즘’이 무슨 뜻이냐고요? 피미니즘(Fiminism)은 이피(Lee Fi Jae)의 피(Fi)와 페미니즘feminism)을 접목시킨 것이고, 프노시즘(Fnositicism)은 이피의 ‘피’와 그노시즘(gnosticism)을 접목시킨 이피의 ‘신조어’이다. 따라서 <피미니즘 프노시즘>은 ‘이피의 페미니즘’과 ‘이피의 그노시즘’을 뜻하는 셈이다. 이피는 <피미니즘 프노시즘>에 전시될 작품들을 제작할 당시를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나는 이 작품들을 제작하는 기간 동안 남성들이 참여를 제한해온 여성들만의 제사, 그 제단을 설치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제단은 불교식, 힌두식, 서양 종교식도 아닌 나만의 그노시스를 품고 있다고 생각되었다. 또한 나는 페미니즘이 미술이라는 형식과 결합하면 그 스펙트럼은 너무나 다양하고 하나의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서도 비밀스러움을 간직하고 있게 될 거라고 생각해 왔다. 이 여성들의 제단 위에 나의 여성성과 존재성과 인식이 있다고 생각되었다.”
 
 이번 자하미술관의 이피 개인전 <여불천위제례>에는 드로잉 21점(2016-2018)과 회화 6점(2017-2018) 그리고 조각 19점(2017-2018)이 전시될 예정이라고 한다. 자, 우선 이피의 드로잉부터 보도록 하자. 흥미롭게도 이피의 드로잉은 그녀의 회화나 조각과 ‘닮은 꼴’이란 점이다. 닮은 꼴? ‘닮은 꼴’에 대한 사례를 직접 들어 언급해 보겠다.
 
 일단 종이에 펜으로 그린 드로잉 <20170509>(2017)를 보자. 그것은 마치 꽃들로 만발한 식물정원에 놓여진 2층 침대에 누워 깊은 잠에 빠진 사람들을 그린 것처럼 보인다. 오잉? 꽃들이 만발한 식물은 다름아닌 인물들 몸에서 자라난 것이 아닌가! 도대체 그들이 얼마나 깊은 잠에 빠졌기에 그들의 몸에서 식물들이 자라는 것조차 모르고 자고 있단 말인가? 당 필자, 그 드로잉이 ‘식물인간’을 그린 것이냐고 이피에게 물었다. 이피의 답변이다.
 
 “지구에서 화성까지 가는 데는 최소 8.5개월이 걸린다고 합니다. 따라서 학계에서는 그 문제를 햐결하는 방안으로 우주비행사의 인공동면을 해결방안으로 내놓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장기간 인공동면에 든 우주여행객의 모습을 그려보았지요.”
 
 흥미롭게도 이피는 드로잉 <20170509>를 모델로 회화작품을 제작했다. 이피의 <300년 만에 다시 태어난 순간>(2018)이 그것이다. 그것은 장지에 먹과 수채 그리고 금분으로 제작된 회화작품이다. 그런데 이피의 드로잉과 회화 사이에는 별다른 차이가 없어 보인다. 이를테면 이피의 회화는 그녀의 드로잉을 착실하게 재현해 놓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이다. 물론 디테일 부분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그들은 서로 ‘닮은 꼴’이다. 그 점에 관해 이피는 ‘작가노트’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나는 컨셉이 선행한 다음 작업을 위해 재료를 구하러 다니고, 형상을 만들고 하는 미술 행위에 대해 회의적이다 (...) 나는 미술은 작가의 두 손과 함께 작업이 진행되는 과정과 순간 속의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그 과정 가운데서 컨셉이 발생하는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 때 발생하는 컨셉이 우리 시대나 사회 문제와 별개가 아닐 것이다. 내 상상력의 원천은 매일 밤 읽고, 쓰고, 그리는 책상 위에서의 소박한 표현 행위에서 비롯된다. 나는 문학 작품, 신화, 철학 등의 서적을 읽거나 신문 등을 읽으며 그날치의 일기를 쓰고, 잠자기 전에 작은 드로잉을 한다. 작은 드로잉엔 내가 그날 그날에 만난 내면적 감흥이나 외부적 형상들이 그려진다. 나는 그 드로잉을 통해 내 상상력이라는 미술적 기능의 한 부분을 키운다.”
 
 드로잉은 흔히 회화와 조각의 ‘보조’ 혹은 ‘밑그림’으로 간주된다. 왜냐하면 드로잉은 ‘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피는 바로 그 ‘날 것’의 드로잉을 그대로 회화나 조각에 적용시킨다. 와이? 왜 이피는 ‘날 것’에 주목하는 것일까? 하나의 개념이 되기 이전의 이미지를 표현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피에게 회화와 드로잉을 일종의 ‘A컷/B컷’으로 구분하려는 이분법은 무의미하다. 문득 “나의 사고가 그림을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그림들이 내 사고를 결정해간다”는 김홍주의 진술이 떠오른다.
 
‘차별’들에 대응하기위한 ‘변신(metamorphosis)’
 
 필자는 지나가면서 이피의 <300년 만에 다시 태어난 순간>은 장지에 먹과 수채 그리고 금분으로 제작된 회화라고 중얼거렸다. 이를테면 그것은 탱화(幀畵)를 접목한 일명 ‘금빛’ 시리즈 중의 하나이다. 여러분도 어시다시피 ‘탱화’는 졸라 어려운 불교 교리를 알기 쉽게 그림으로 그린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탱화들을 보면 석가의 설법 내용을 담은 경전들 중에서 특히 <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과 <법화경(妙法蓮華經)>의 내용을 도설화 하는데 중점을 두었다고 한다.
 
 그런데 법화경의 ‘묘법(妙法)’이 오늘날 말하는 ‘미묘하다’라는 의미를 넘어 수준이 졸라 높아 ‘이해하기 어렵다’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땡화를 그린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알려준다. 어떻게 미국 시카고 아트인스티튜트에서 미술을 전공한 이피가 자신의 작품에 탱화를 접목시킨 것일까? 이피의 육성을 직접 들어보자.
 
 “중국 둔황에 갔다가 막고굴(莫高窟)에 그려진 탱화를 보게 됐어요. 정말 멋지더라고요. 그전부터 제 그림에 불교적인 색채가 있다는 얘기를 종종 들었던 차에 천년을 간다는 탱화의 안료를 배워서 사용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수소문해서 만봉스님의 제자인 원미희 선생님에게 2010년부터 배우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저도 모르게 정말 깊이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그전에는 두껍고 거칠었던 선이 간결해지고 밀도가 높아졌어요.”
 
 자, 원점으로 돌아가 보자. 원점? ‘여불천위제례’ 말이다. 우선 탱화를 접목한 이피의 ‘금빛’ 시리즈 중의 하나인 <모든 종교의 천사>(2017)를 그 사례로 들어보자. 그것은 장지에 먹과 수채 그리고 금분으로 그려진 회화이다. 이피는 화면 중앙에 날개를 가진 거대한 형상을, 주변에 각종 화살들과 폭탄들 그리고 각종 사물들과 인물들을 그려놓았다.
 
 이미 작품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날개를 가진 거대한 형상은 ‘천사’를 암시한다. 그런데 그 천사가 ‘모든 종교’의 천사란다. 그러고 보니 천사의 날개에 묘한 기호 같은 이미지들이 그려져 있는 것이 아닌가. 그 묘한 기호 이미지들 중에 십자가도 보인다. 그 점에 관해 이피는 ;작가노트‘에 다음과 같이 썼다.
 
 “내 회화 작품들은 고려불화의 선과 색채를 원용하는데, 나는 이 기법으로 서양 회화의 등장인물인 ‘천사’를 그려보고 싶었다. 천사를 그리는 것은 일종의 메신저, 심부름꾼, 징조를 그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또한 천사들을 자신의 몸처럼 사용하는 ‘신’보다 그 몸을 중앙에 놓아드리는 작업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천사를 불러옴으로써 우리나라에서 죽어간 많은 영혼들을 위로해 드리고 싶었다.”
 
 서양의 종교화는 대부분 중앙에 신을 위치시키고 주변에 천사들을 배치한다. 탱화 역시 주존(主尊)을 중심으로 군상들이 배치된다. 그러나 이피는 그 중심(신)/주변(천사)을 뒤집어 놓는다. 두말할 것도 없이 그녀의 기존 이분법 뒤집기가 단지 기존 이분법에 대한 반대만으로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그녀의 이분법 뒤집기는 천사를 통해 최근 국내에서 죽어간 많은 영혼들을 위로하기 위함이다.
 
 그 ‘불씨’는 이피의 <난 자의 난자>(2018)으로 불붙는다. 그것은 마치 교회에서 제단에 올리는 세 폭짜리 그림을 일컫는 ‘트립틱(Triptych)’처럼 보인다. ‘세폭 제단화’는 세 부분으로 구획되어 중앙의 한 폭에 좌/우 폭들을 포개지도록 하기위해 경첩을 설치해 놓았다. 따라서 세폭 제단화는 접었다-펼쳤다를 할 수 있다. 물론 이피의 <난 자의 난자>는 모두 같은 크기로 제작된 세폭의 장지에 먹과 수채 그리고 색연필과 금분으로 그린 ‘삼면화(三面畵)’이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세폭 제단화’는 중앙 패널에 그리스도나 성모 혹은 성인 등 중심 주제를 안치하고, 양 날개 패널에는 부차적인 주제를 묘사해 놓는다. 그런데 이피의 <난 자의 난자> 중앙에는 드레스를 입은 여성을 위치해 놓고, 양 날개에는 각종 이미지를 그려놓은 풍선 같은 것들이 부유하고 있다. 물론 그 풍선 같은 이미지는 중앙 상단과 여자의 드레스 안에도 등장한다.
 
 머시라? ‘난 자의 난자’가 무슨 뜻이냐고요? 전자의 ‘난 자’는 태어난 자를 뜻하는 반면, 후자의 ‘난자’는 암컷의 생식 세포인 ‘알(卵子)’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피의 ‘삼면화’에 부유하는 풍선 같은 이미지가 바로 ‘난자(ovum)’를 상징하는 것이 아닌가? 머시라? 여성의 ‘알’ 안에 그려진 각종 이미지들은 무엇을 의미하느냐고요? 그 점에 관해 이피는 ‘작가노트’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여성의 ‘알’ 속엔 여성이 키우지 못한 무수한 생명들이 들어 있다. 여성의 몸에 가해진 시선들, 금들, 억울한 누명들, 폭력들, 폭언들과 마음을 다치게 하는 무수한 차별들이 여성으로 하여금 제 알의 보따리들을 열어보지도 못하게 하지 않은가. 나는 그렇게 떠나보낸 무수한 알들을 여자인 나의 제단에 평등하게 배치하고 싶었다.”
 
 깜빡할 뻔 했다. 이번 자하미술관에 전시될 이피의 작품들 중에서 6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8폭 병풍 작품도 있다. <내 몸을 바꾸기 위한 신체 진열대>(2017)가 그것이다. 그것은 행거에 걸어놓은 8벌의 기괴한 ‘신체’들을 표현한 것이다. 이피는 그 그림들을 흥미롭게도 8폭 병풍으로 제작해 놓았다. 네? 행거에 걸린 것이 무슨 ‘신체’냐고요? 그 점에 관해 이피는 ‘작가노트’에 다음과 같이 밝혔다.
 
 “<내 몸을 바꾸기 위한 신체 진열대>는 여성의 몸이라는 것을 벗고 입을 수 있는 것이라면 하고 상상해 보았다. 마치 한 생 안에서 윤회를 거듭하는 우리처럼 말이다. 내 한 몸이지만 여러 몸들인 진열장을 상상해 보았다. 8쪽의 몸들을 걸어두는 공간을 상상하자 병풍이 되었다. 나는 병풍 안에 내 몸 8개를 걸어놓고 날마다 바꿔 입는 상상을 했다. 누가 나를 다치게 하면 나는 또 다른 몸을 입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피의 <내 몸을 바꾸기 위한 신체 진열대>는 ‘여성의 몸에 가해진 시선들, 금들, 억울한 누명들, 폭력들, 폭언들과 마음을 다치게 하는 무수한 차별들’에 대응하기위해 ‘변신(metamorphosis)’을 택한 것이 아닌가? 마음이 아프다. 그녀에게 닥친 ‘난관(차별)’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변신’을 택했을까. 물론 그 ‘난관’은 이피에게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라 대한민국에의 대부분 여자에게도 해당될 것이다.
 
신생대 이피세 자연사 박물관
 
 그런 까닭일까? 이피는 자하미술관의 제1전시실에 드로잉과 회화를 전시하는 반면, 그녀는 제2전시실을 아예 자연사박물관으로 전환시키겠다고 한다. 이름 하여 ‘신생대 이피세 자연사 박물관 프로젝트’이다. 신생대 이피세?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신생대(新生代)’는 지질 시대의 구분(시생대→고생대→중생대→신생대) 중 가장 최근의 시대이다.
 
 신생대(Cenozoic Era)는 ‘포유류의 시대’로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곤충연대기>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곤충학자 스콧. R. 쇼(Shaw, Scott R)는 인간이 아닌 생물의 진화사 측면에서 바라볼 경우 ‘신생대의 주인은 포유류가 아니라 곤충과 꽃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는 ‘절지동물의 영향이 없었다면 척추동물은 진화하고 번성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보았다.
 
 2000년 네덜란드의 화학자로 1995년 노벨화학상을 받은 폴 크뤼천(Paul Crutzen)이 지금까지 계속되던 충적세가 끝나고, 과거의 충적세와는 다른 새로운 지질시대가 도래했다는 뜻에서 ‘인류세(Anthropocene)’를 제안했다. 그런데 인류세의 ‘인류’라는 이름은 인류에 의한 자연환경 파괴로 인해 도래한 것이란 점에서 붙은 것이란 점이다. 따라서 인류세는 환경훼손의 대가를 치러야만 하는 현재 인류 이후의 시대를 가리킨단다. 뭬야? ‘이피세’는 무엇을 뜻하느냐고요? 이피의 육성을 직접 들어보자.
 
 “나는 폴 크뤼첸이 말한 대로 우리의 지구가 신생대 제4기 충적세(Holocene) 이후 자연 환경이 급속도로 파괴되는 인류세를 지난다고 주장한 견해를 나의 ‘일기적 형상’들로 감각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의 형상들은 가시적인 것들과 비가시적인 것들 사이에서 생겨난 에이리언들 같았다. 나는 그 형상들에 이름을 붙여 주면서 나 또한 ‘이피세(LeeFicene)’라는 시기를 통과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만약 관객이 이피의 ‘신생대 이피세 자연사 박물관’에 들어선다면, 흔히 자연사 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진열장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피의 ‘신생대 이피세 자연사 박물관’에 진열된 진열장 안에는 기괴한 생물종(biospecies)들로 가득하다는 점이다. 그것은 여러분께서 아직까지 만나보지 못했던 아니 ‘세상에 없는 생물종’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마치 여성들이 가사 노동으로 음식을 만들 듯, 옷을 만들 듯 이파가 손으로 찰흙을 주물럭거려 만든 조각작품이기 때문이다. 이피는 ‘금빛 피부’의 기괴한 생물종들에게 기괴한 이름들을 지어주었다.
 
 19명의 성인남녀를 싣고 가는 거미소녀, 내 속에 사는 나를 다 꺼내놓고 춤추는 오늘의 나, 맑은 바다에 가라앉은 용설란과 사람의 넋을 기리는 산호, 모공마다 슬픈 얼굴을 키우는 지네, 모공마다 환자가 누워있는 병원처럼 정신없는 여자, 백개의 다른 시간을 살아가느라 울고 싶은 여자, 아직 죽지 않았는데 몸에서 풀이 돋는 인간, 지루한 시간의 감옥에서 붓을 갖게 된 오징어, 짖어대는 개들의 송곳니가 깃털인 새, 팔이 줄자처럼 늘어나고 뼈가 축축한 미역.
 
 궁금하죠? 이피는 ‘금빛 피부’의 기괴한 조각들을 ‘현생누대 신생대 이피세 대백과’ 시리즈로 부른다. 머시라? 이파가 만든 ‘세상에 없는 생물종’에 대해 좀더 언급해 달라고요? 이피는 육성을 직접 들려주겠다.
 
 “이 생물은 상상 동물이라기보다는 정치사회경제의 모습으로 나의 현상적 삶에 닥쳐온 어떤 시간의 단면도이며 그것의 의인화(personification), 의동물화(anthropomorphize)라고 할 수 있다. 나는 나만의 생물 대백과, 자연사 박물관 프로젝트를 구상한다. 나는 그것에 대해 <현생누대 신생계 이피세 대백과>라고 이름 붙인다. 일상적 시간의 진화의 고비마다에서 살아남아 나의 감정이 되고 사유가 되며 언어가 된 형상을 조각 설치한다.”
 
‘참 나’를 찾아가는 여정
 
 2004년 미국 시카고 베이스 스페이스(Base Space)에서 열렸던 이피의 개인전 <나의 제단(My Shrine)>으로부터 시작해 <스킨 앤 아웃(Skin & Out)>(2006), <Le Massacre de Jesus Egoiste>(2007), <Fi Jae Lee>(2009), <나의 서유기>(2010), <Her Body Puzzle>(2011), <이피의 진기한 캐비닛>(2012), <내 얼굴의 전세계>(2014), <천사의 내부>(2016), <당신은 내 파이프와 구멍들을 사랑합니까?>(2017), <피미니즘 프노시즘>(2018) 그리고 이번 자하미술관의 <여불천위제례>에 이르기까지 이피의 ‘서유기’는 고비마다에서 살아남은 에피소드(개인전)들로 이루어져있다.
 
 ‘해파리 평론가’인 필자가 이피의 방대한 ‘서유기’를 읽어낸다는 것은 ‘81가지 고난’보다 더 힘든 미션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이피의 ‘서유기’를 단편적이나마 즐겁게 읽어보았다. 왜냐하면 이피의 각 에피소드는 지밀하게 기획되었지만, 각각의 에피소드들 사이의 문맥은 느슨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것은 여러 여성들의 다양한 목소리들을 담고자 했기 때문이 아닐까?
 
 손오공이 선인으로부터 근두운(勤斗雲)의 법을 전수받아 10만 8000리를 단숨에 날아갈 수 있듯이, 이피는 부모(시인 김혜순 & 연출가 이강백)으로부터 예술적 끼를 유전적으로 물려받아 ‘72반(般)’ 변화의 술을 자유자재로 부린다. 손오공이 도술을 배워 옥황상제나 부처와 힘겨루기를 하듯이, 이피는 예술적 끼로 예수와 힘겨루기를 한다. 손오공은 용궁의 용왕으로부터 빼앗은 1만 3천5백 근이나 되는 ‘여의봉(如意棒)’을 가지고 요괴들을 물리치지만, 이피는 오히려 요괴들과 함께 ‘불의(차별)’에 맞선다.
 
 지나가면서 중얼거렸듯이 이피는 아직 서역에 도착하지 못했다/않았다. 그녀는 여전히 ‘고난’을 겪고 있는 중이다. 그녀가 언제 ‘서역’에 도착할 수 있을지 알 수도 없다. 하지만 그녀는 앞으로 주어질 또 다른 위험천만한 임무들을 수행하기 위해 새로운 ‘분신술’을 쓰기도 할 것이고, 오징어 냄새와 같은 독특한 ‘향기권법’을 휘두를지도 모른다. 그런데 “탱화를 그린다는 게 불가에서는 수양의 의미도 있다”고 이피가 말했듯이, 그녀의 ‘서유기’는 ‘참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녀는 고난의 여정 중에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나는 나를 억압하고, 공포에 짓눌리게 하고, 분노케 하는 것이 나를 차별하는 시선들, 질시하는 제도들,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 편견에 찬 문화적 토양들 때문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차츰 나는 그 낯선(Unheimlich) 것들이 어떤 패러독스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낯설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것 자체가 낯선 것이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낯설다고 느낌으로써 그것을 멀리하고자 하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나에게 그런 낯선 것이 본래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오히려 보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나는 그런 것들의 정체를 홀로 앉은 밤에 대면했다.”

    ■ 이 피
  
  한국 미술계가 한국적 알리바이를 작가에게 요구하는 것은 오히려 한국미술로서의 자존감이 부족하거나 미술에 대한 독자적 정의 능력이 부족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 적이 있다. 나는 한국 미술 작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미술의 변방이나 혹은 밖에서 내 미술 작업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컨셉이 선행한 다음 작업을 위해 재료를 구하러 다니고, 형상을 만들고 하는 미술 행위에 대해 회의적이다. 더구나 당면한 한국의 제반 문제에 대한 즉각적이고도 표면적인 대답을 하는 것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실제 자신의 정신이나 일상세계 속에서 그렇게 중요시하지 않으면서도 작품을 할 때만은 정치적, 추상적 유행 관념을 내세우는 것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미술은 우선 제 손 안에서 유희적이어야 하고, 미적이어야 한다. 나는 미술은 작가의 두 손과 함께 작업이 진행되는 과정과 순간 속의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그 과정 가운데서 컨셉이 발생하는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 때 발생하는 컨셉이 우리 시대나 사회 문제와 별개가 아닐 것이다. 내 상상력의 원천은 매일 밤 읽고, 쓰고, 그리는 책상 위에서의 소박한 표현 행위에서 비롯된다. 나는 문학 작품, 신화, 철학 등의 서적을 읽거나 신문 등을 읽으며 그날치의 일기를 쓰고, 잠자기 전에 작은 드로잉을 한다. 작은 드로잉엔 내가 그날 그날에 만난 내면적 감흥이나 외부적 형상들이 그려진다. 나는 그 드로잉을 통해 내 상상력이라는 미술적 기능의 한 부분을 키운다.

  이 전시의 제목인 “여-불천위제례”는 여(女)와 불천위제례(不遷位祭禮)를 연결해 조어로 만든 것이다. 이 전시의 작품들을 제작한 기간의 나를 돌아보자, 나는 이 작품들을 제작하는 기간 동안 남성들이 참여를 제한해온 여성들만의 제사, 그 제단을 설치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제단은 불교식, 힌두식, 서양 종교식도 아닌 나만의 그노시스를 품고 있다고 생각되었다. 또한 나는 페미니즘이 미술 이라는 형식과 결합하면 그 스펙트럼은 너무나 다양하고 하나의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서도 비밀스러움을 간직하고 있게 될 거라고 생각해 왔다. 이 여성들의 제단 위에 나의 여성성과 존재성과 인식이 있다고 생각되었다.

  2016년 개인전 이후 우리나라에선 거대한 촛불 혁명이 있었고, 나는 그 시위의 나날들을 보낸 다음 스페인 빌바오에 머물렀다. 나는 서울을 떠나 낯선 곳에 몇 달씩, 몇 년씩 체류할 때마다 서울에 있을 때보다 강렬하게 내 한 몸, 여자의 몸인 나를 강렬하게 느꼈다. 낯선 거리에서 나는 아시아에서 온 낯선 여자였다. 나는 거대한 땅 위를 낯설게 떠도는 하나의 작은 섬이었다. 나는 그들의 시선으로 벗겨진 몸일 뿐이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건, 내가 어떤 사람이건, 내가 어떤 용무로 그곳에 왔건 그들은 일단 내 몸으로 나를 판단했다. 여자들에게 위험한 곳이라고 알려진 지역에 숙소 건물이 있었는데 나는 그곳에 들어갈 때마다 그들의 시선의 권력을 온몸에 받는 느낌이 있었다.

 레지던스에선 우선 나는 “촛불을 든 백만 개의 손을 위한 만달라 프로젝트”를 그렸다. 촛불 혁명은 나에게 몸의 혁명이었다. 매주 토요일 밤 백만 명이 일단 추위를 뚫고 한 장소로 나오지 않았는가. 그들이 그들의 몸에 달린 손을 쳐들지 않았는가. 성대를 울려 다 같은 함성을 지르지 않았는가. 다 빛을 흔들지 않았는가. 나는 낯선 타국에서 오히려 선명하게 다시 떠오르는 그 손들을, 그 몸들을 불러오고자 했다. 나는 그 손들을 클로즈업한 다음, 그 광장에 있었던 우리에게 하나의 신화를 선물하고 싶었다. 우리는 그 가을에서 겨울까지 하나의 신화를 창조했다고 생각했다.

 내 회화 작품들은 고려불화의 선과 색채를 원용하는데 나는 이 기법으로 서양 회화의 등장인물인 ‘천사’를 그려보고 싶었다. 천사를 그리는 것은 일종의 메신저, 심부름꾼, 징조를 그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또한 천사들을 자신의 몸처럼 사용하는 ‘신’보다 그 몸을 중앙에 놓아드리는 작업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천사를 불러옴으로써 우리나라에서 죽어간 많은 영혼들을 위로해 드리고 싶었다. 죽음 소식을 들으면 몸이 떨렸다. 분노와 슬픔이 복합된 감정이 치솟았다. 나는 제단화를 구상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제단화엔 신이 가운데 좌정하고, 천사는 위나 뒤로 밀린다. 그와 반대로 나는 천사를 가운데 배치하고, 동서양의 신들은 천사 날개의 품에, 폭탄과 화살들을 사방에 배치했다. 천사는 하늘과 땅, 삶과 죽음, 이승과 저승, 명사와 다른 품사들 사이의 조사나 전치사처럼 사이에 사는 메신저이다. “모든 종교의 천사”는 주객전도, 색채와 내용을 전도시켜 본 것이다.
 
  여성의 몸에 대한 생각은 나의 회화의 계속되는 화두다. “내 몸을 바꾸기 위한 신체 진열대”는 여성의 몸이라는 것을 벗고 입을 수 있는 것이라면 하고 상상해 보았다. 마치 한 생 안에서 윤회를 거듭하는 우리처럼 말이다. 내 한 몸이지만 여러 몸들인 진열장을 상상해 보았다. 8쪽의 그림으로 제작했다. 8쪽의 몸들을 걸어두는 공간을 상상하자 병풍이 되었다. 나는 병풍 안에 내 몸 8개를 걸어놓고 날마다 바꿔 입는 상상을 했다. 누가 나를 다치게 하면 나는 또 다른 몸을 입을 수 있었다.
 
  “난 자" "의" "난자”는 3폭의 그림으로 완성되었다. 가운데 여성의 몸이 있고, 양쪽에 그 여성의 알들이 배치되어 있다. 여성의 ‘알’ 속엔 여성이 키우지 못한 무수한 생명들이 들어 있다. 여성의 몸에 가해진 시선들, 금들, 억울한 누명들, 폭력들, 폭언들과 마음을 다치게 하는 무수한 차별들이 여성으로 하여금 제 알의 보따리들을 열어보지도 못하게 하지 않은가. 나는 그렇게 떠나보낸 무수한 알들을 여자인 나의 제단에 평등하게 배치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