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동, 완월장취 玩月長醉
2022.11.25(금) ~ 12.25(일)
■ 전시 안내
○일시: 2022.11.25(금) ~ 12.25(일)
○장소: 자하미술관
○시간: 10:00~18:00 (월요일 휴관)
○장르: 회화, 설치
○ 오프닝: 11.25(금) 오후 4시
■ 전시 소개
11월 25일부터 12월 25일까지 권기수 작가의 개인전 《동동, 완월장취》가 개최된다. 권기수는 인물을 단순화하여 표현한 ‘동구리’라는 기호로 우리에게 친숙한 작가이다. 아기자기한 구성과 화려한 색감 등만 보면 그의 작업은 단순히 순수예술과 대중문화의 경계를 허물고자하는 팝아트로 분류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권기수의 작품들은 매화, 대나무, 설산, 강가 등을 배경으로 하는 고사(古事)와 전통 산수화를 바탕으로 하기에 동양의 전통 정신을 많은 현대적인 기호와 기하학적 형식으로 재구성한 동양화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작가의 트레이드 마크이자 항상 웃는 얼굴의 동구리는 매화, 대나무, 파초 등 우거진 초목들 사이로 달밤 강가에서 나룻배를 타고 있다. 강물이 끊임없이 흐르는 속성을 생각할 때, 이는 마치 과거와 현재를 자유롭게 오가는 시간여행을 하는 것처럼 보이며 여행의 풍경은 과거 사대부들이 찬미하던 서울의 풍광을 연상하게 한다. 과거 한양 도성에서 한강은 물, 바람, 달빛 등에 따라 흥취를 일으키는 주요 풍광이었고 강변에는 수경관(水景觀)을 즐기려는 왕족들에 의해 다양한 누정이 세워졌다. <Reflection of the Moon>(2012) 시리즈와 같이 조선의 문인들은 한강에서 유유자적 나룻배를 탔는데, 이들이 강가에서 즐기는 풍류에는 술이나 노래도 있지만 서울의 각양각색 누정에서 나누는 시문과 서화도 있었다. 특히 현재 작가의 연남동 작업실이 있는 마포, 즉 한강 서호에 있던 누정은 담담정(淡淡亭)과 희우정(喜雨亭)이다. 담담정은 몽유도원을 꿈꾸던 조선 최대의 문화예술 애호가 안평대군의 별서로 안평은 이 곳에서 당대 문인들과 함께 종종 시서화를 겨루었다고 한다. 이 시기 탄생한 이승소의 〈담담정십이영 淡淡亭十二詠〉은 현재 남아있는 서울 팔경시의 대표 작품 중 하나이며 다음은 십이영의 일부이다.
양화추월 / 이슬이 하늘을 씻어 달빛 밝은 때 / 나루터는 인적 끊기고 저녁 밀물 평평하다. / 섬계剡溪의 높은 흥취가 여전히 남았으니 / 하늘과 물이 어우러져 온통 맑아라.
희우사양 / 강가 누정은 석양빛에 붉고 끊긴 노을이 산들을 곱게 장식한다. 왕유의 망천輞川마냥 시중화詩中畫 경지 멋진 이 경치를 시 주머니에 죄다 거두련다.
- 이승소 《삼탄선생집 三灘先生集》 권1 〈담담정십이영 淡淡亭十二詠〉 中
담담정과 가까운 희우정은 오늘날 망원정으로 불리는 바 효령대군이 풍류를 즐기며 지냈던 별장이다. 오랜 가뭄이 들던 시기 세종이 들렀을 때 마침 단비가 내려 기쁜 마음에 희우정이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이 정자는 후에 문종이 자신의 신하들에게 귤과 직접 지은 <귤시 橘詩>를 나누어준 일화도 유명하다. / 가장 좋은 것은 동정의 귤 愛最洞庭橘 / 코에도 향긋하고 입에도 달다네 香鼻又甘口 / 라는 구절은 과일의 향과 시를 즐기던 당대 문화의 한 장면을 여실히 보여준다.
권기수의 작품들에는 이처럼 한강 누정에 얽힌 옛 시문이나 이야기에 어울리는 달밤의 정취가 물씬 풍겨나고 있다. 그러나 이를 즐기다보면 다시 오늘날의 서울로 돌아오지 않을 수 없다. 담담정이나 희우정에서 사대부들이 감탄하던 풍경에는 이제 아파트, 학교, 음식점 등의 현대식 건물들이 들어서 있으며 시문과 서화로 자연의 정취를 함께 나누던 문화 또한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그렇다면 동구리의 시간여행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동구리가 나룻배를 타고 있는 강물 수면에는 항상 둥글게 파문이 일어난다. 이는 현실과 이상향의 경계는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따라서 이상세계로의 여행이란 실제로 불가능함을 시사한다. 그러나 비록 실현불가능할지라도 몽유도원을 꿈꾸었던 안평대군처럼 많은 이들은 마음 한 켠에 자신만의 이상향을 간직하며 살아가고 있다. 옆집 이웃이나 친구처럼 생긴 동구리는 유토피아에 닿고자 하는 이들의 염원을 대신 이루어주는 기호로써 이상과 현실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모습을 보여준다.
찬 공기 속 하늘이 더욱 맑아가는 겨울, 《동동, 완월장취》는 동구리의 발걸음을 쫓으며 과거 달밤의 정취를 되살려볼 것이다. 이번 전시를 통해 많은 이들의 ‘나’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우리’이기도 한 동구리가 되어 자유를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란다.
박유한 큐레이터
관람객 및 관계자 여러분들의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