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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

광주는 언제나 산의 품 안에 있었다. 이 도시가 품은 깊은 상흔과 숭고한 정신을 묵묵히 바라본 존재, 무등산은 늘 그 자리에 있었다.

이번 전시는 무등산이라는 하나의 풍경이 어떻게 시간과 역사, 정신과 생명의 상징으로 확장될 수 있는지를 예술적 시선으로 풀어낸 장대한 여정이다. 작가는 자연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 전시는 그 응시의 기록이자, 되새김이다.

 

무등산

광주의 북쪽을 굽어보며 우뚝 서 있는 무등산은 이 도시가 겪은 모든 아픔과 희망, 절망과 연대의 순간들을 묵묵히 바라보아 왔다. 5월의 광주도, 그 이전도, 그 이후도, 모두 이 산의 시야 안에 있었다. 작가는 이 무등산을 단지 자연의 풍경이 아니라, 시간과 기억의 목격자이자, 역사의 증인, 그리고 자연과 인간이 평등하게 마주서는 존재로 바라보았다.

그의 카메라는 산을 위에서 내려다보지 않고, 산의 눈높이에 서서 마주 본다. 즉 작가의 프레임 안에는 산과 인간이 함께 호흡하는 시선이 담겨 있다. 산은 어떤 말도 하지 않지만, 우리는 그 속에서 깊은 위로와 질문을 동시에 마주하게 된다.

 

무등산 의재길

무등산 자락을 따라 이어지는 ‘의재길’은 근대 한국화의 대가 허백련이 평생 자연과 함께 예술을 일구었던 길이다. 그는 평생을 무등산 아래서 차를 키워 후학을 양성했으며, 그 정신을 기려 무등산을 오르는 초입에는 그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임채욱 작가는 이 길을 따라 걸으며, 자연 앞에 겸허한 태도로 임했던 의재의 정신을 되새겼다. 그는 산이 지닌 시간과 기억, 그리고 그 안에 스며든 예술가들의 정신을 사진 속에 차분히 응축해낸다.

 

무등산 오월길

임채욱 작가는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광주의 5월을 품은 장소들을 담았다. 금남로, 전일빌딩245, 5‧18민주광장, 전남대학교 그리고 5‧18민주묘지까지. 그 여정은 시간의 결을 따라 걷는 기억의 순례였다.

전남대학교 안에 자리한 윤상원 열사의 동상 뒤편에는 매년 봄 동백꽃이 핀다. 그 동백은 피어 있는 꽃봉오리 채로 떨어진다. 그러나 낙화는 끝이 아니며, 해마다 동백은 다시 피어나고, 그 피어남은 단순한 계절의 순환이 아니라, 윤상원과 함께하며 울고 웃은 이들의 정신이 퍼지는 순간이다.

작가는 오월길을 통해 생명의 사슬, 정신의 귀환을 담았다. 이는 역사 앞에서 예술이 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태도이며, 시각적 헌사이다.

 

무등산 물들길

‘산은 물의 몸이고, 물은 산의 정신이다’

작가는 무등산의 5월의 정신이 끊임없이 흐르는 물을 통해 이어진다고 믿는다. 꽃잎이 떨어진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정신은 물에 실려 계속 흘러가야 한다는 것이다. 작가는 배롱나무의 붉은 꽃잎이 물 위에 떨어지고, 흘러가는 장면을 장노출기법으로 포착했다.

배롱나무는 백일동안 피고, 지고, 또 다시 피는 꽃이다. 그 오랜 개화의 시간은 곧 생명에 대한 집념이며, 사라짐과 동시에 잔류를 상징한다.

꽃잎은 물 위에 떨어지고, 흘러가지만 그 흔적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가 포착한 존재는 단지 꽃이 아닌, 꽃이 물들인 시간인 것이다.

그러므로 물들길은 꽃이 져버린 비탄의 장이 아니라, 생명의 개화이며, 기억의 순환, 정신의 흐름, 희생의 존엄이 담겨 시간이 이어지는 풍경이다. 광주의 붉은 꽃은 아직 피어 있으며, 작가는 그 흐름이 결코 끊기지 않음을 배롱나무로 표현했다.

 

무등산 전시는 하나의 거대한 풍경이자, 기억이며, 생명이다.

무등산은 늘 광주를 내려다보며 고통과 희생, 연대의 시간을 묵묵히 지켜보아 왔다. 자연은 말을 하지 않지만, 모든 것을 본다. 무등산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고, 백일홍은 다시 피고, 동백은 다시 떨어진다. 그 반복 속에서 우리는 매번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

무등산에 대한 응시는 꽃에 대한 관찰로 이어진다. 자연을 바라보는 임채욱 작가의 세계가 어떻게 확장되고 있는지, 그 확장의 중심에 있는 ‘꽃’이라는 존재에 대한 깊은 관찰과 사유를 함께 선보이고자 한다.

 

작가는 고유한 시선과 자연에 대한 섬세한 관계 맺기를 통해 자신만의 작업 세계를 꾸준히 구축해왔다. 사진이라는 매체를 넘어 마음과 시간의 결을 담아내려는 그의 진정성은 이번 전시에서도 깊이 있게 드러난다.

이번 전시는 단지 무등산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무등산이 지켜본 광주의 역사, 그 안에 깃든 사람들의 정신, 그리고 다시 피어나는 생명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관객들에게 삶과 죽음, 기억과 재생이라는 보편적인 감각들을 다시 마주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자하미술관 큐레이터 길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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