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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대전-오월의 하늘> 전시 연장: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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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희장 개인전

《흐르는 시간, 충돌 속 부유

 2023.12.8. - 12.22.

자하미술관

 

  자하미술관에서 지희장 작가의 개인전 《흐르는 시간, 충돌 속 부유》를 개최한다. 지희장은 뉴욕 School of Visual Art를 졸업하고 홍익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뉴욕, 파리, 서울 등을 오가며 활동을 해오고 있다. 유학시절을 중심으로 작가는 정착하는 대신 떠다니듯 부유하며 살아온 삶 속의 개인적/사회적 경험들을 다양한 매체로 선보인다. 그간 작가는 여성이라는 정체성으로 혹은 생물학적 몸으로 주체-세계가 맺는 관계를 탐구하며 자연과 조응했다. 또한, 한국적 소재인 옥춘을 활용한 작업으로 외국생활을 겪으면서 오히려 깊이 성찰하게 된 한국적 감성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번 2023년 개인전에서 지희장은 각기 다른 장소들을 경험해 온 맥락에 패브릭으로 하는 새로운 실험들을 더해 선보이고자 한다. 사각의  전형적 캔버스가 아닌 원형이나 반달 등 둥글고 유연한 형태의 화면에 작가는 한국을 상징하는 한복의 천, 프랑스를 상징하는 레이스, 미국을 상징하는 청(Jean) 등 세 종류의 각기 다른 패브릭을 교차해서 활용한 신작들을 준비했다. 작품에 활용된 각 종류의 천은 이질적인 소재이지만 유연한 패브릭의 특성상 서로 상충하여 파괴되지도 하나로 통합되지도 않는 중간에서 다층적 레이어를 형성한다. 이들은 작가가 살아가면서 맺어 온 각양각색의 관계들을 뜻하며 둥근 캔버스에는 가치관 및 이해관계의 충돌 속에서 유연하게 계속 변화하는 삶의 태도가 내포되어 있다. 둥글게 변화 중인 상태는 그러나 단순히 연약하고 위태로운 태도만은 아니다. 오히려 과감한 색채의 활용과  ‘감각의 카니발’, ‘욕망의 절제’ 등 의 작품명에서 알 수 있듯 작품들은 부드러움 속 당당하고 강인한 에너지를 발산한다. 지희장의 작업들은 그가 스스로 겪어 온 감각적, 정서적 경험들을 다층적으로 축적한 노력이자 여러 관계들의 틈이나 격차에서 오는 혼돈을 지나오며 미학적으로 추상화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12월, 차가운 공기와 선명한 하늘 아래 부암동 산자락 자하미술관에 방문하여 지희장 작가가 만들어내는 부드러운 충돌이 만들어내는 색채의 향연을 감상할 수 있기를 바란다.

관계의 결을 품은 공간의 직조

 

배혜정(단국대학교 연구교수, 문화살롱 5120 디렉터)

 

  미술관의 1층, 높은 천창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햇살로 가득한 공간을 채운 〈부유하는 여정〉은 생의 환희로 가득하다. 빨주노초파남보의 무지개 빛깔은 색의 스펙트럼을 통해 삶의 처음과 끝, 그 안의 여정 모두를 은유하는 듯 한데, 이 무지개색의 거대한 파노라마 천이 에워싼 가운데 모빌처럼 매달린 알록달록한 조각들이, 그리고 그 아래의 거울 단상이 관객을 맞이한다. 단상의 거울은 단상 위 부재하는 주인공이 바로 당신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지희장의 시그니쳐인 달콤한 옥춘에서 기원한 알록달록한 조각들은 거울 위 나의 얼굴과 겹쳐지고 삶의 여정에는 달콤한 환희도 씁쓸한 고난도 존재하지만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말한 찰리 채플린의 말을 떠올리게도 한다. 고통의 순간 까지도 또한 지나고 나면 빛나는 순간을 함께 이루는 보색일 수 있다는 점을 변형된 옥춘의 형태와 색으로 보여주고 있달까? 이제 결코 짧다고 할 수 없을 예술 경력 속에서 지희장은 이번 개인전 《흐르는 시간, 충돌 속 부유》를 통해 유쾌하면서도 단호하게 그의 삶과 예술, 대상과 그 대상을 대하는 태도, 인간과 비인간, 예술가와 재료 등 관계의 층위들을 특유의 중첩의 방식으로 펼쳐 놓는다.

 

관계의 결

  회화와 섬유미술을 함께 공부한 지희장이 사용하는 섬유는 미술에서 오랫동안 여성의 소재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리고 지희장의 초기 퍼포먼스나 〈자궁〉, 혀 시리즈의 작품들은 여성성에 대한 작가 특유의 표현 역량을 담은 작업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 지면은 이번 전시를 논하는 데 할애하기로 한다.) 이 물성이 여성성을 띤다는 점을 넘어서 그 특성을 한껏 풍부하게 드러내는 동시에 섬유의 텍스쳐가 자아내는 가능성들을 탐구하는 것은 작가 특유의 강점인 듯하다. 지희장의 작업에서 천은 2차원 평면 작업에서 중첩되어 공간을 자아내고 중첩의 틈을 통해 충돌과 유쾌한 어긋남의 정서를 일군다. 여기서 작가 특유의 공간감이 생겨난다. 그리고 전시장 안에서 개별 작품들은 크게 공간을 감싸안아 그 관계 속에서도 공간에 대한 다층적 해석을 만들어 낸다.

  ‘관계’ 자체가 작가가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탐구해 온 키워드이기도 하지만 그에게 관계는 인간과 인간, 인간과 예술, 작가와 작품 등등 관계항의 보편적인 항목을 넘어선다. 인터뷰에서 작가는 천을 사러가는 길의 기대감을 들려주었다. 소재를 구하러 시장을 가는 중에 “오늘은 어떤 천을 만날까”하는 부푼 마음을 품고 간다는 것이다. 그날 그와 만난 천은 하늘 하늘한 ‘샤’일수도, 보기만 해도 무게감이 느껴지는 스웨이드와 같은 천일 수도 있다. 그렇게 만난 천들이 그녀의 작업속에서 동그랗고 때로는 비정형의 형태로 나타나며, 어떤 때는 가지고 있는 무늬 그대로 겹겹이 쌓이면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다. 여기서 지희장의 작업 태도 하나를 규정할 수 있을 것인데, 바로 그에게서 관계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우연이자 사건으로서의 성격을 띠며, 그것이 이후의 작업세계를 구성해 나가는 열린 항이 된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희장의 작업은 그 과정을 시간적으로 그려볼 수 있다. 그가 이미 무늬가 그려진 한복천을 만날 때, 그는 거기서 부터 시작해 떠오르는 영감을 붙든다. 데님 소재와 한복자수가 만나 고딕 창이 되고 투명한 물 빛깔 천과의 만남은 〈수궁가〉의 세계로 이어진다. 그 생경한 마주침은 그 너머의 감각적 층위와 더불어 이야기를 생성하는 것이다.

 

공간의 직조

  전시가 열린 자하미술관은 부암동 주민센터를 왼쪽에 두고 오르막 길을 굽이 굽이 따라 올라가 길의 끝에 이르러 만나게 되는 곳이다. 오르는 길이 힘들다 싶다가도 미술관의 2층에서 내려다보는 풍광에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명소이기도 하다. 작가는 이 미술관의 공간적 특징 그리고 자연과의 어울림을 지나치지 않았다. 먼저 작가가 십분 활용한 이 공간의 특징적인 장소는 높은 층고를 가진, 자연광이 그대로 들어오는 1층 공간이다. 예술가의 입장에서 이 천창이 마냥 반가울 수만 없는 것이 작품의 소재에 따라 자연광이 부담이 될 수도 있고 작품에 상충하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지희장은 〈부유하는 여정〉에서 직사각형 형태의 이 공간에 거대한 커튼형 패브릭을 둘러서 모난 공간을 둥글리고 무대를 만들었다. 그리고 천창의 맞은편 〈시간의 통로〉는 고딕 성당의 창 형태로 다시 공간이 열리는 대위법을 구성한다. 이 창은 울트라 마린 계열의 데님 소재와 한복 천을 이용하여 중앙은 깊은 밤을 그리고 좌우 창은 달빛으로 이염된 듯한 밤의 세계를 연 다음, 자수와 변형된 옥춘의 형태들로 한여름 밤 꿈과도 같은 이야기를 잣는다. 위 아래의 색동 한복 천은 마치 선물인 양 다시 무지개를 선사한다. 겹겹이 펼쳐지는 세계와 이야기의 이러한 직조는 이 공간에 또 다른 층위를 더한다.

  2층에서는 작가가 만들어낸 세계와 물질 공간의 또 다른 공명을 만날 수 있다. 2층의 전시장 입구를 들어서서 〈절제의 욕망〉과 〈욕망의 절제〉, 〈충돌 속 부유〉가 만들어내는 배치가 바로 그것이다. 절제와 욕망이라는 두 단어의 배치를 이용한 의미심장한 말장난으로 이름 붙여진 두 작품은 다음 전시장으로 향하는 입구의 좌우, 직각을 이룬 벽에 위치한다. 그 사이로 보이는 벽면에 둘의 종합으로서 〈충돌 속 부유〉가 자리하는데, 인간의 본성을 연상케하는 단어의 의미도 의미지만 이 상반되는 인간의 본능과 미덕 사이에서 〈충돌 속 부유〉는 집게 손가락으로 꾹 눌러 내리고 싶은 버튼으로도 보인다. 시각적 부유를 넘어 관객으로 하여금 행동을 추동하게 하는 힘을 갖기도 하는 것이다.

 

  전시를 다 돌아보고 마무리하는 마지막 작품은 북악산의 절경과 어우러지는 〈녹아든 풍경〉이다. 서울을 굽어보는 그 산에 녹아 내리는 옥춘사탕은 한 겨울의 산에 옥춘의 맛이 그렇듯 상쾌한 달콤함을 더한다.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Félix González-Torres, 1957~1996)에게 사탕은 예정된 상실의 두려움을 이겨내는 것이자 관객과의 내밀한 접촉을 담은 것이었다. 지희장에게 한때 욕망의 기표로 읽혔던 그 사탕을 작가는 이제 다르게 그려내는 듯하다. 작가를 상징하던 그 사탕에서 이제는 벗어나고 싶을 수도 있겠으나 작가는 잠재성을 담지한 대상의 변형을 통해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이제 작가는 옥춘이 자신의 욕망, 자아를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예술을 마주하는 우리의 소망, 그리움, 위로가 되기를 바라는 듯하다. 지희장에게서 사물이자 대상, 색과 소재, 그 관계들에서의 조형과 공간은 이렇듯 다양한 층위의 내용과 능숙한 매체의 사용을 통해 펼쳐진다. 조형 언어의 풍부함과 능숙함, 이것이 우리가 앞으로 그의 작업을 계속 기대하게 되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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