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EXHIBITIONS

CURRENT    UPCOMING     PAST

자하미술관 개인전 포스터 1.jpg
보기, 촉각하기, 그리고 인식하기
김인선 평론
Current: 소개

  조각은 대상을 상정하는 순간부터 재료의 선택과 변형 과정을 수반한다. 거칠게 깎이고 다듬어지며 형상이 드러나는 과정은 조율과 마모, 그리고 마감에 이르는 일련의 변환의 연속이다. 이러한 점에서 조각은 시간의 축적과 물질의 변화가 시각화되는 매체라 할 수 있다. 이재훈의 ‘동양화’ 또한 이러한 조각적 과정과 닮아있다. 밑작업을 위해 장지 위에 두텁게 발린 석회는 시간이 지나 단단히 경화된다. 그리고 작가는 그 물질적 층위를 구축하는 동시에 자신만의 풍경을 발견해낸다. 작가가 선택한 이미지를 제외한 부분은 섬세한 마모 과정을 거쳐 평면성을 회복한다. 이미지로서 남겨진 마티에르 위로 목탄 가루와 선이 섬세하게 더해져 선명한 형상이 서서히 자리 잡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이재훈의 동양화’라는 명명은 단순한 장르적 구분을 넘어선다. 그것은 조각과 회화가 공유하는 제작의 원리와 함께, 전통 동양화의 철학적 사유가 그의 작업 안에서 물질적·정신적 차원 모두에서 명징하게 구현되고 있음을 함의한다. 나아가 이러한 특성은 이번 전시에서 관람자가 경험하게 될 인식 체계의 이중적 구조와 직접적으로 맞닿는다.

 

  작업실에서 만난 이재훈은 흥미로운 일화를 들려주었다. 당나라 시대의 한 왕이 친구의 시를 읽다 문득 그 친구가 그리워져 배를 타고 길을 나섰으나, 도중에 “흥이 다했으니 돌아가자.”며 뱃머리를 돌렸다는 이야기였다. 왕을 움직이게 했던 것은 친구를 향한 ‘흥(興)’, 친구와 보낸 과거의 좋은 기억과 이를 이어주는 미래에 대한 기대의 감흥이었는데, 배를 타고 가는 동안 왕의 인식 속에서 이미 형성되었던, 그래서 그것은 고정된 것이 아닌,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하는 기운(氣)의 흐름과도 같았다. 이재훈은 동양화에서 자주 언급되는 ‘기운생동(氣韻生動)’을 허상에 가까운 상태로 본다. 자연 풍경은 본래 끊임없이 변하지만(움직이지만), 화폭 위에 옮겨지는 순간 정지된 이미지로 머물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정지된 그림 속에서 실제의 순간을 떠올릴 때에야 비로소 그것을 ‘생동한다’고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일화 속 왕의 행위는 고정된 정념이 아니라, 감흥(興)이 발생하고 사라지는 시간적 사건이었다. 작가는 이 사건을 ‘기운’의 흐름과 동일시하며, ‘생동’이란 그림 속 이미지 자체에 내재한 속성이 아니라, 감각의 작용과 기억의 운동을 통해 발생하는 현상적 사건임을 제시한다. 즉, ‘생동’은 재현의 결과물이 아니라 지각의 과정이다. 이재훈에게 석회의 표면을 더듬는 것은 단순한 조형 행위가 아니라, 기억과 감각을 매개로 한 인식의 수행이며, 물질을 통해 시간의 흔적을 가시화하는 일종의 감각적 탐구이다.

 

  멈추지 않고 흐르기에 시간 속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동양화에서 왜 이토록 ‘선(線)’을 중시하는가에 대한, 대학시절부터 이재훈이 던졌던 물음에도 답을 제공한다. 선은 정지된 화면 속에서도 시간의 흔적이자 움직임의 증거로 작동하기 때문일 터이다. 종이의 표면 위에서 석회 재료의 질감과 흔적을 드러내며 이미지를 ‘발견’해 나가는 작가의 촉각적 과정은, 기억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현상적으로 드러내는, 비물질적 개념이 물질적 감각으로 전이되는 장으로서, 그리고 이재훈 특유의 회화적 형식이 된다. 즉 붓의 흔적은 단순한 이미지의 경계를 넘어, 누군가의 기억을 환기시키거나 감흥을 일으키는 매개체로 작용하는 것이다. 그렇게 화면 위의 흔적은 단일한 형상에 머물지 않고 ‘시간의 잔존물’로서 존재하며, 관람자의 감각과 정동(情動)을 자극함으로써 ‘정지 속의 생동(生動)’이라는 역설적 상태를 구성한다.

  전시 <그 곳 There>이라는 제목에는 시간의 간극이 놓인 듯한 거리감이 내포되어 있다. ‘그 곳’은 지금 이곳이 아닌,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넘어 존재하는 장소로, 현재의 우리에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감각을 제공한다. 전시에 제시된 작품들은 이러한 시간적 거리와 더불어 이중적 인식 구조를 품고 있다. 예를 들어, 작품 ⟪펑!⟫(벽화기법, 장지에 석회, 먹, 목탄가루, 아교, 채색, 80×130cm, 2025)이나 ⟪활활활⟫(벽화기법, 장지에 석회, 먹, 목탄가루, 아교 채색, 320×140cm, 2025)의 화면 속 이미지는 실제로는 불타오르는 장작의 모습을 그린 것이지만, 언뜻 보면 누군가에게는 만개한 꽃의 군락이나 바람에 흔들리는 이파리처럼, 그리고 어느 새벽녘 한가로운 풍경으로도 보일 것이다. 이러한 인식의 전환은 이미지의 존재가 “무엇인가”보다 “어떻게 보이는가”에 초점을 맞출 때 발생한다. 불타는 장작이 화려한 꽃잎으로 인식되는 순간, 우리는 감각의 전이 속에서 인식의 오류이자 새로운 지각의 확장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시각적 모호함을 통해 관객으로 하여금 자신의 기억을 불러일으키고, 인식의 층위를 따라 시간이 살아 움직이는 장소로 진입하도록 유도한다. 전시 <그 곳>은 결국 과거와 현재, 실재와 인식이 교차하는 지점이자, 물질과 비물질이 공존하는 공간이며, 현상적 시간이 흐르는 동시에 정신의 잔영이 선명히 드러나는 장소로서 작동한다. 그것은 우리가 ‘다시 경험하는 시간’, 즉 기억과 감각이 맞물려 생성되는 존재의 공간이다.

 

  전시 공간 속 작품의 배치는 작가의 조형적 의도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며 인식의 구조를 시각적, 공간적으로 실험하는 장으로서 제시된다. 작가는 관람자가 실내 공간으로 옮겨진 이미지들 앞에서 마치 특정한 환경 속으로 의식이 이행되는 듯한 감각을 경험하도록 공간을 구성하는데, 이를 위해 ‘양면화(兩面畵)’ 형식을 도입함으로써 회화의 전통적 평면성을 넘어서고자 한다. 이러한 시도는 단순한 화면의 확장을 넘어, 회화가 공간적 사건으로 작동하도록 하는 일종의 감각적 실험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재훈은 이를 ‘이동시점(移動時點, time of movement)’ 개념으로 구현한다. 관객은 동선의 흐름 속에서 필연적으로 이미지와 반복적으로 마주하게 되고, 그때마다 인식의 초점이 이동하며 시각의 지평이 변화한다. 작품들은 시선의 거리를 제어하고 물리적 크기의 판단을 어렵게 함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시각적 몰입과 지각적 긴장의 상태에 머물게 한다. 결국 전시 공간은 화면과 관객, 이미지와 신체가 서로를 규정하며 교차하는 장(場)으로 변모하게 되는 것이다. 이곳에서 회화는 더 이상 평면 위의 재현이 아니라, 감각과 인식이 맞닿는 현상적 경험으로 존재하며 우리를 다른 장소와 시간으로 이끈다.

 

  이재훈은 어느 날 새벽녘, 안개와 불타는 장작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뒤섞이는 순간, 이중적인 인식의 상태를 경험했다. 이미 알고 있고, 경험해 온 것에 대한 기억이 새롭게 마주한 시각적 인식보다 앞서는 찰나였을 것이다. 그 순간은 현상과 인식이 교차하는 지점으로 향했다. 그것은 작가가 들려준 화산수서(畵山水序 최초의 산수화론)를 서술한 종병(宗炳)의 일화와 닮았다. 종병은 늘 부처상을 연상하게 하는 산세를 바라보며 매일 산을 올랐지만, 나이가 들어 더 이상 산을 오르기 힘들어졌다. 그러자 자신이 늘 보아온 산의 모습을 떠올려 그림으로 그리고 이를 벽에 붙여두었으며 마치 그 산으로 오르는 기분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번 전시 <그 곳 There>에서 작가는 전시 공간을 매개로 우리 각자의 기억으로 향하게 하지만, 동시에 그 방향이 정해지지 않은 ‘그 곳(there)’을 탐색하게 한다.

Current: 소개
bottom of page